사랑 후에 남겨진것들......
- Posted at 2009/02/26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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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또 무엇인가.
수많은 영화가 다뤄왔던 소재이지만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만큼 용감하고 또 잔인하게 이 소재를 노려보는 영화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유머가 섞인 가벼운 어조를 띄고 있지만 영화는 묵직하게 속 깊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는 것과 죽는 것, 함께 있는 것과 떨어져 있는 것, 영원한 것과 영원하지 않는 것은 어떤 것인가 질문을 던지며 끈질기게 해답을 찾아나선다.
영화는 씨줄과 날줄이 빈틈없이 잘 짜여진 천처럼 촘촘하면서도 힘이 있다.
사과나 파리, 손수건, 장신구, 그리고 후반부에 나오는 죽은 이의 재까지 감독이 자연스럽게 심어놓은 소품들은 보는 이의 가슴을 콕콕 찌르는 것처럼 적확하며, 일상적인 것에서부터 깊이 있는 은유를 담은 것까지 힘있는 대사들은 관객들의 심장에 묵직하게 내려앉는다.
투박한 화면을 가지고 있지만 영화는 연기에서부터 대사, 이야기, 주제에 대한 통찰력과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까지 어느 하나 나무랄 데가 없다. '파니 핑크'를 보고 열광했던 관객이라면 도리스 되리 감독이 거장이 돼서 돌아왔음을 보고 다시 열광할 만하다.
자녀들을 외지로 보낸 뒤 남편과 함께 노년을 보내던 여성 트루디(엘마 베퍼)는 의사로부터 남편 루디(한넬로어 엘스너)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무너져내린다.
'그 사람이 없이 살 수 있을까' 남편을 졸라 아이들을 만나러 베를린행 기차를 타는 트루디는 "매일 먹는 사과 한 쪽이면 병원 갈 일 없다"며 자신하는 루디에게 차마 그의 몸 상태를 말하지 못한다.
베를린에서 아들과 딸을 만나지만, 왠지 아이들의 모습은 낮설다. 함께 뭘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어색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함께 있으니 행복하다. 일본에 사는 아들 칼(막시밀리안 브뤼크너) 생각이 나지만 만나러 가기에는 너무 먼 곳에 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사람은 남편이 아니라 아내였다. 여행 중 갑작스럽게 트루디가 세상을 떠나자 루디는 큰 충격을 받는다. '남겨진 시간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혼자 돌아온 집에 아내의 빈자리는 견딜 수 없이 크다.
'아내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중얼거리던 루디는 여행 가방에 아내의 옷과 장신구를 넣고 아내가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일본을 향해 떠난다.
죽음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은 트루디가 추고 싶었고, 루디가 일본에서 보게 되는 일본 전통춤 부토(舞蹈)에 응축돼 있다. '그림자의 무용'이라고 불리는 이 춤은 남은 남편이 먼저 떠나간 아내와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원제는 '벚꽃-꽃구경'이라는 뜻의 'Cherry Blossoms-hanami'이다. 영화 속 벚꽃은 아내에게 남편이 보여주고 싶던 것이며 벚꽃 구경이 한창인 공원은 남편이 부토를 보게 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소중한 것은 없어져야 그 가치를 안다고 했던가. 사랑이 그렇다. 바로 이 지점에서 서성이며 머무는 것이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이다.

암 말기로 시한부 삶을 영위하는 루디(엘마어 베퍼). 규칙적으로 살아온 모범생 공무원이지만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남자이다. 그의 아내 트루디(하넬로레 엘스너)는 일본에 가서 부토춤을 추고픈 꿈을 접고 그를 돌본다. 겉으론 평생을 같이 산 평화로운 노부부이다. 그러나 한 꺼풀 벗기고 들어가면 아내의 억압과 남편의 깨닫지 못한 사랑이 착종되어 있다.
우리 모두 시한부 삶이기에 의학적 판정에 따른 시한부만 먼저 떠나란 법은 없다. 바로 그런 돌연변수가 발생한다. 남편이 죽기 전 아이들을 보러 방문한 베를린 여행 후 오히려 아내인 트루디가 먼저 세상을 떠난다. 오즈의 걸작 '동경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대목이지만, 본론은 이제부터다. 늙은 부모를 부담스러워하는 자식들 이야기는 식상하니까. 남겨진 시한부 남편은 홀로 아내의 접은 꿈을 느끼려 일본으로 떠난다.
루디는 아내의 해원굿을 하듯 도쿄를 떠돈다. 아내의 옷을 코트 속에 입고, 아내가 그렇게 추고파 했던 부토를 드디어 만난다. 부토는 명상과 몸짓이 자연스레 어우러지면서 영혼의 자유를 표현하는 그림자 춤이다. 게이샤 같은 흰 분칠을 하고, 남루한 기모노를 입은 채 전화기 코드와 몸을 일치시키며 부토를 추는 유(아야 이리즈키)와의 만남은 영화보기의 정점을 이룬다. 홈리스 부토춤꾼 유와 루디가 나누는 우정은 후지산으로 이어진다.
이 독특한 관계는 세상의 상식적 관계방식을 넘어선다. 나이 든 부르주아 서구 남성이 완전히 다른 존재, 그러니까 일본의 홈리스 어린 여자와 소통한다는 것. 거기로부터 이성애 로맨스를 넘어서는 관계의 창의성과 묘미가 우러나온다. 아들은 아버지의 정신상태를 의심하지만 루디는 부토를 통해 떠나간 아내의 사랑을 절감한다. 사랑이 떠나간 후 음미하는 또 다른 차원의 사랑법이다.

사람들은 사랑을 못해 안달이 나고, 사랑에 빠지면 흥분과 불안을 오가지만, 사랑 후에 대해서는 대책이 없다. 사랑을 욕망한다면 사랑 후에 대하여, 즉 사랑의 그림자조차도 소중하게 기려야 한다는 예지, 그런 스피릿이 도리스 되리의 시선을 통해 마음속에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후지산과 벚꽃을 당신과 함께 보고 싶어.” 생전에 지켜주지 못한 트루디의 소망을 이뤄주기 위해 루디는 일본행 비행기에 오른다. 아내를 그리며 무작정 떠나왔지만 낯선 나라의 낯선 도시에서 슬픔은 극한에 달할 뿐이다. 하지만 우연히 댄서 유를 만나 부토를 배우며 슬픔은 찬찬히 정화되고 후지산을 찾을 용기를 얻는다.
부토는 그림자와 하나가 되는 춤이다. 실체와 존재가 하나 되는 것. 루디에게 부토는 트루디와의 합일을 향한 몸짓이다. 오랜 기다림을 이겨내고 후지산이 펼쳐진 풍광 앞에서 춤을 추는 루디의 몸짓에 트루디의 영혼이 겹쳐지는 순간, 둘의 사랑은 진정으로 아리따운 꽃을 피운다. 찰나의 아름다움으로 피어난 그들의 사랑은 흐드러지게 피어난 벚꽃 아래 춤추는 어린 소녀 유의 몸짓에 아로새겨진다. 유의 기억 속에서 그들의 사랑은 영원을 보장받는 것이다.
삶 속에서 무엇이 우리를 꽃피게 하고 또 시들게 하는 것일까? 우리는 그 무엇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삶을 직시하고 올곧게 앞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루디가 트루디를 향한 사랑의 기억으로 성숙하고 감동적인 여정을 계속했듯이 말이다.
항상 곁에 있기에 소중함을 몰랐던, 아내의 부재는 루디에게 감당할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다. 루디는 아내가 떠난 뒤에야 아내의 바람을 깨닫고, 전재산을 털어 아내가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도쿄로 향한다.
그리고 "왜 이제야 찾아왔냐"는 막내아들에게 고통스럽게 회한을 털어놓는다.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이 많은 줄만 알았다." "내게 남은 그녀의 기억은 내가 죽으면 어디로 갈까." 아내의 옷을 입고 절규하는 루디의 때늦은 후회가 가슴을 친다.
감독은 삶과 사랑에 대해 끝없이 질문을 던지면서도 굳이 정답을 제시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부토 춤을 추며 후지산에서 아내와의 진정한 마지막을 맞이하는 루디를 통해 죽음이 때론 삶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일 수 있음을 일깨워주고, 뒤늦은 후회만 거듭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숙명적 아둔함을 담담히 보여줄 뿐이다

Posted by 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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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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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정말 알까?
많이도 울었다.
영화를 보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