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가 간신히 이해는 가는데 너무 어려운 말이라 가슴에 썩 와닿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적어 놓는다. 자꾸 보다 보면 좀 더 기억 또는 이해할 수 있을까해서...
왜 갑지기 이런 책을 읽냐고? 삶이 괴롭고 힘들어지면 원칙부터 흔들리는 법, 흔들리는 원칙을 지키려면 이상주의자들의 뜬구름 잡는 글들을 읽어둬야 제자리를 지킬거라는 생각에...
---------(9월 19일 덧붙임)-------------------------
위 글 중 실존주의의 '인간은 이유없이, 우연에 의해 이 세계에 던져진 존재일 뿐이다.'라는 얘기는 나를 자극한다.
흔히 "이렇게 나약하고 쓸모없는 내가 왜 태어났는지 모르겠어."라는 자학하는 말에 대한 위로로 "걱정하거나 슬퍼할 필요는 없어. 신께서 너를 이 세상에 아무런 이유없이 내보내시지는 않았을꺼야.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들도 다 어딘가에 쓸모가 있듯이 이 세상 어딘가에는 분명히 네가 세상에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거야."라는 말의 완전한 뒤집음이 아닌가? "넌 그냥 우연하게 태어났어. 어쩌면 너희 부모들의 수십 번의 섹스에서 벌어진 수십 번의 사정에서 버려진 콘돔 껍질처럼 넌 그저 쾌락에 대한 부산물에 불과한지도 몰라. 네 존재는 별 의미 없어."라는 얘기로 들려서... 그러므로 실존주의란 내겐 용납될 수 없는 이론으로 전락해버렸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 행위의 총합이다.'라는 부분에는 전적으로 동감을 표한다. 타인을 의식하는 데 있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말과 행동 뿐... 독심술사가 아닌 이상 그 사람의 마음까지 알아낼 방법은 없다. 그가 아무리 A라는 생각을 한다하더라도 그것을 증명할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의 입장에선 '그가 A라는 생각을 한다'라고 이해할 방법이 전혀 없다. 그러므로 그를 나타내는 모든 척도는 결국 그 사람의 말과 행동 뿐!!!
어느날 문득 내가 흔히 농담으로 자주했던 말이 상대방에겐 마치 나의 진심인양 받아들여져 당황했던 적이 있어서, 그 다음부턴 그런 식의 농담은 피하게 됐다. 또는 농담을 할 때는 '이 말은 농담이다.'라는 어떤 표시를 적극적으로 하게 되었고...
그나저나 몇 페이지도 안되는 이 책을 언제 다 읽을건지...
실존주의란 무엇인가음... 엄청 길다. 길어서 더 무슨 얘기인지 헤매는 것인가?
실존주의와 관련한 흔한 오류 중의 하나는 '실존(existence)'과 '존재(etre)'의 혼동이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것과 같은 이 혼동이 저질러지면 이후의 논의는 재앙일 뿐이다.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의 정수를 담고 있는 사르트르의 주요 저술의 제목이 '존재와 무'라는 것을 상기하자. 존재의 대립항은 '무'이며 실존의 대립항은 '본질'이다. 그렇다면 무에 대립되는 존재는 쉽게 이해가 가는데, 본질에 대립되는 실존이란 무엇인가?
거칠게 말해 실존이란 인간이 태어났을 때 누구나 가지는 육체의 덩어리라고 할 수 있다. 이 육체의 덩어리는 다른 육체의 덩어리, 다른 사물의 덩어리와 구별되지 않는다. 어떤 육체의 덩어리를 다른 육체의 덩어리, 다른 사물의 덩어리와 구분해 주는 것이 바로 본질이다. 말하자면 개체는 그 자신의 고유한 본질을 지니고 있다. 가령 어두운 골목길 저 멀리서 날 기다리는 물체를 생각해 보자. 흐릿한 그 덩어리는 사람인지 짐승인지 아니면 사물인지 알 수가 없다. 이를테면 그 덩어리는 내게 본질 규정이 결여되어 있는 실존 그 자체이다. 그런데 내가 점점 가까이 다가감에 따라 그 덩어리는 다른 물체와 구분이 된다. 어둠 속 그 물체는 바로 우리 집 대문 앞에서 서성이며 날 기다리던 어머니였던 것이다. 늘 넉넉한 미소,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고운 심성 등의 본질을 가진 우리 어머니... 그렇다. 나라는 '존재'는 육체의 덩어리라는 '실존'을 가지고 있고, 다른 사물, 다른 사람과 구분되는 '본질'을 가지고 있다. 단순하게 공식화하자면 이렇다.
존재=실존+본질
사르트르에 의하면 사물의 경우에는 본질이 실존을 앞서지만, 인간의 경우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 예를 들면 목수가 의자를 만들고자 할 때 목수는 먼저 머릿속에서 의자의 기능이나 모양새 등 의자의 본질을 결정하고, 일정 기간의 작업 후 비로소 의자라는 실존을 탄생시킨다. 그런데 인간의 경우에는 육체의 덩어리라는 실존의 탄생 이전에 그것을 규정할 수 있는 본질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사르트르의 생각이다. 인간은 이유없이, 우연에 의해 이 세계에 던져진 존재일 뿐이다.
물론 실존주의 철학 이전의 본질 철학은 인간의 경우에도 본질이 실존에 앞선다고 본다. 예컨대 기독교에서 인간의 본질은 이미 신에 의해 규정되어 있다. 인간은 선한 인간이 될 것이다. 실존은 이 계율, 이 본질을 좇아 살아야 진정한 인간이 될 것이 바, 이를 벗어나는 삶은 인간 이하의 삶, 즉 동물의 삶이 될 것이다.
반면 실존주의 철학에 따르면, 세계 내에 던져진 인간에게 미리 정해진 규범이나 본질이 없는 이상 인간은 무슨 행동이든지 해도 좋다. 이를테면 그에게는 무한한 자유가 주어져 있다. 그렇지만 무슨 짓이든 해도 좋은 이 무한한 자유, 이 공허하고 덧없는 자유가 사르트르에게는 구토를 일으켰다. 나는 내 곁의 돌부리를 차도 좋고 안 차도 좋다. 나는 내 곁의 친구를 때려도 좋고 안 때려도 좋다. 그러므로 매순간 나는 수많은 행동 가운데서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런데 내 곁의 친구는 내게 타자이며, 이 타자는 나와 똑같은 자유의 구토를 느끼고 있는 의식이다. 따라서 내가 그를 때릴 때 나와 똑같은 가치를 지니는 의식으로서 그는 내게 반응할 것이며, 내게 내 행동의 책임을 물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항상 책임을 의식하며 행동을 선택해야 한다. 인간에게 있어 본질이란 바로 이 모든 선택의 결과에 다름 아니다. 내가 이런 선택을 했더라면 나는 이런 본질을 가졌을 것이며, 내가 저런 선택을 했더라면 나는 저런 본질을 가졌을 것이다. 여기서 사르트르의 유명한 명제가 탄생한다. '인간은 자기 행위의 총합이다.'
존재, 무, 실존, 본질, 이유 없음, 우연성, 자우, 구토, 의식, 선택, 책임 등 실존주의의 본질적 어휘들은 대체로 위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카뮈 혹은 적어도 카뮈의 대표작 [이방인]이 이런 실존주의 정신을 공유하고 있음은 물론다. 카미에게도 뫼로소에게도 삶과 죽음은 절대적으로 이유가 없는 것이다.
---알베르 카뮈(살림 출판사, 유기환 저) 중에서
왜 갑지기 이런 책을 읽냐고? 삶이 괴롭고 힘들어지면 원칙부터 흔들리는 법, 흔들리는 원칙을 지키려면 이상주의자들의 뜬구름 잡는 글들을 읽어둬야 제자리를 지킬거라는 생각에...
---------(9월 19일 덧붙임)-------------------------
위 글 중 실존주의의 '인간은 이유없이, 우연에 의해 이 세계에 던져진 존재일 뿐이다.'라는 얘기는 나를 자극한다.
흔히 "이렇게 나약하고 쓸모없는 내가 왜 태어났는지 모르겠어."라는 자학하는 말에 대한 위로로 "걱정하거나 슬퍼할 필요는 없어. 신께서 너를 이 세상에 아무런 이유없이 내보내시지는 않았을꺼야.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들도 다 어딘가에 쓸모가 있듯이 이 세상 어딘가에는 분명히 네가 세상에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거야."라는 말의 완전한 뒤집음이 아닌가? "넌 그냥 우연하게 태어났어. 어쩌면 너희 부모들의 수십 번의 섹스에서 벌어진 수십 번의 사정에서 버려진 콘돔 껍질처럼 넌 그저 쾌락에 대한 부산물에 불과한지도 몰라. 네 존재는 별 의미 없어."라는 얘기로 들려서... 그러므로 실존주의란 내겐 용납될 수 없는 이론으로 전락해버렸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 행위의 총합이다.'라는 부분에는 전적으로 동감을 표한다. 타인을 의식하는 데 있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말과 행동 뿐... 독심술사가 아닌 이상 그 사람의 마음까지 알아낼 방법은 없다. 그가 아무리 A라는 생각을 한다하더라도 그것을 증명할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의 입장에선 '그가 A라는 생각을 한다'라고 이해할 방법이 전혀 없다. 그러므로 그를 나타내는 모든 척도는 결국 그 사람의 말과 행동 뿐!!!
어느날 문득 내가 흔히 농담으로 자주했던 말이 상대방에겐 마치 나의 진심인양 받아들여져 당황했던 적이 있어서, 그 다음부턴 그런 식의 농담은 피하게 됐다. 또는 농담을 할 때는 '이 말은 농담이다.'라는 어떤 표시를 적극적으로 하게 되었고...
그나저나 몇 페이지도 안되는 이 책을 언제 다 읽을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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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알베르 카뮈.
대학 댕길 때 무지 좋아라~ 했던...
쟝 그르니에도 더불어 좋아하쥐.
특히 장 그르니에는
청하 출판사에서 나온
쎄련미 넘치는 표지의 책으로 5권이나 아즉 갖구 있다눈...
지금도 어쩌다가, 아주 어쩌다가 읽어보기두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