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미국의 교육계를 시찰하고 돌아온 신교장께서 그곳은 교문 안과 교문 밖의 한계가 분명하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물론 우리와는 입장이 현격하게 다른 그곳의 이야기므로 꼭 경청할 만한 이야기인지는 알 수 없다.
신교장이 방문한 어느 주립고등학교 교장실에서 면담을 하고 있을 때 창너머 길가에서 바로 방문교의 학생인 듯한 젊은이들이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신교장은 직접 말하기도 거북해서 슬며시 돌려 말한다는 것이 귀교 학생들의 생활지도를 어떻게 하느냐는 식으로 물었더니, "우린 학교 담 안에서의 일만 책임을 집니다. 담 밖에서의 일은 사회의 책임이죠"라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이런 극단적인 얘기가 우리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다면, 그건 우리도 불원간에 이런 상태가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요즈음처럼 청소년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될 때면 나는 그들의 단순성이 - 교육의 문제를 간단히 교문 안과 밖의 책임으로 돌려버리는 - 차라리 바람직할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드는 것이다.
나는 언젠가 교사의 과중한 업무에 대한 것을 거론한 적이 있거니와 더구나 아이들의 학교 밖에서의 일거일동까지 모두 교사의 인격적 존경으로 묶어 둘 수 있다고 장담할 뱃심은 없다. 역시 학교가 감당할 몫의 한계가 있기 마련이며, 그런 명확한 한계의식은 바로 책임 의식과도 통할 수 있다.
사회가 교육해야 할 몫과 가정이 맡은 몫이 따로 있으며 그것이 학교 교육과 긴밀한 유대, 호응, 조화를 갖는 데서 원만한 교육이 성취된다는 당연한 원칙이 자주 깨어질 때마다 나는 신교장의 얘기가 생각나곤 한다.
교사가 교문 밖의 사회나 가정의 몫까지 관여하고 지도하고 깨우치는 것이 얼핏보면 한국적인 사고방식으로 보아 퍽 인간적인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사고야말로 비합리적이고 무책임한 것으로 오용(誤用)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없지 않다.
ㅂ동이라면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우범지역이다. 거기다 ㅂ여중이 서있는 산 X번지는 소위 텍사스촌이라는 별칭처럼 그야말로 무법지대이다. 어른들도 밤이면 외출을 꺼리는 곳, 엄청난 인구밀도로 꼽히는 이곳은, 한번이라도 와 본 사람이라면 봉우리마다, 계곡마다 밀집된 그 많은 집들을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이런 곳에 겨우 파출소라곤 하나 있을 뿐, 그래서 인구이동조차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곳이다. 아이들은 이런 골목 언덕을 매일같이 오르내리며 학교엘 다닌다.
학교 진입로, 거리 건너에 즐비한 술집들, 여름이면 열어놓은 문안에서 들려오는 젓가락 두드리는 고성방가와 웃음 소리가 확성기처럼 흘러, 늦은 학교길의 아이들 귀를 어지럽힌다.
보여주는 것도 좋겠지만 이런 경우에 만은 위선이라도, 가장이라도 좋으니 좀 숨기는 척하는 안간힘이 그립다.
아버지의 잦은 술주정, 폭행, 부부싸움, 그리고 어머니의 가출, 언니의 탈선, 이런 틈바구니에서 동생들을 보살피며 학교를 겨우 나오던 옥수는 결국 2학년도 못 끝내고 자퇴를 했다. 그 아이를 찾으러 ㅂ동의 골목 골목을 뒤지던 무덥던 어느 여름, 나는 골목마다 가득 가득 넘친, 방치되어 버려진 아이들의 물결을 보았다. 부모가 부재중인 컴컴한 방에서 비슷한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모여 앉아서 하는 짓이란 어른들 흉내 밖에는 없을 것이다.
일년에도 서너번 이사를 하는 옥수네 방을 겨우 찾았을 때 옥수는 이미 나의 학생이 아니었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교사로서의 역할이 아닌 다른 역할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거리에 나붙은 큼지막한 극장간판 위에는 교목을 입은 남녀학생이 손을 맞잡고 마주보고 웃는 얼굴이 아이들을 유인한다. 거기다 '학생입장대환영'이란 간판 밑으로 아이들은 꾸역 꾸역 몰린다.
"청소년 영환데 왜 가면 안 되나요? 남학생과 극장에 간게 뭐 그리 큰 죄인가요?"
신문에도 거리에도 요란한 간판을 왜 학교에서만은 죄악시하느냐다. 내 잘못이란 재수가 없어 걸린 것 뿐이라는 말이다. ㄷ여중의 명희가 아무리 변명을 해도 학교는 가차없이 처벌한다. 문제가 커지면 골치거리가 되니깐.
교육위원회나 문교부는 어떤가. 신문에 보도된 고발, 적발된 학원 비위조사와 그 뒤치닥거리에 바쁜 그들, 백년지대계는 백년 뒤의 일이니까 천천히, 나중에, 이런 식으로 아마 백년쯤은 이대로 나갈 작정인가. 백년 후에 무엇이 되어 나타날 것인지 이 가공할 괴물을 상상조차 하고 있는지......
그렇다고 해서,
"난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 즉시 우리 아일 외출금지 시키죠. 더구나 해만 졌다하면 집앞 가게에도 심부름 시키지 않아요. 이게 제일 좋은 방법이죠"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어느 어머님처럼 아이들을 가두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걸까. 임시방편은 될지 모른다. 그러나 궁극적인 해결은 아이들을 어두워진 뒤에도 집앞 가게 정도에는 혼자 심부름 갈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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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저작권은 저자 '김하경'씨에게 있습니다. 제 글이 아니기 때문에 이 글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허락할 수 없습니다.
신교장이 방문한 어느 주립고등학교 교장실에서 면담을 하고 있을 때 창너머 길가에서 바로 방문교의 학생인 듯한 젊은이들이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신교장은 직접 말하기도 거북해서 슬며시 돌려 말한다는 것이 귀교 학생들의 생활지도를 어떻게 하느냐는 식으로 물었더니, "우린 학교 담 안에서의 일만 책임을 집니다. 담 밖에서의 일은 사회의 책임이죠"라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이런 극단적인 얘기가 우리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다면, 그건 우리도 불원간에 이런 상태가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요즈음처럼 청소년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될 때면 나는 그들의 단순성이 - 교육의 문제를 간단히 교문 안과 밖의 책임으로 돌려버리는 - 차라리 바람직할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드는 것이다.
나는 언젠가 교사의 과중한 업무에 대한 것을 거론한 적이 있거니와 더구나 아이들의 학교 밖에서의 일거일동까지 모두 교사의 인격적 존경으로 묶어 둘 수 있다고 장담할 뱃심은 없다. 역시 학교가 감당할 몫의 한계가 있기 마련이며, 그런 명확한 한계의식은 바로 책임 의식과도 통할 수 있다.
사회가 교육해야 할 몫과 가정이 맡은 몫이 따로 있으며 그것이 학교 교육과 긴밀한 유대, 호응, 조화를 갖는 데서 원만한 교육이 성취된다는 당연한 원칙이 자주 깨어질 때마다 나는 신교장의 얘기가 생각나곤 한다.
교사가 교문 밖의 사회나 가정의 몫까지 관여하고 지도하고 깨우치는 것이 얼핏보면 한국적인 사고방식으로 보아 퍽 인간적인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사고야말로 비합리적이고 무책임한 것으로 오용(誤用)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없지 않다.
ㅂ동이라면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우범지역이다. 거기다 ㅂ여중이 서있는 산 X번지는 소위 텍사스촌이라는 별칭처럼 그야말로 무법지대이다. 어른들도 밤이면 외출을 꺼리는 곳, 엄청난 인구밀도로 꼽히는 이곳은, 한번이라도 와 본 사람이라면 봉우리마다, 계곡마다 밀집된 그 많은 집들을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이런 곳에 겨우 파출소라곤 하나 있을 뿐, 그래서 인구이동조차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곳이다. 아이들은 이런 골목 언덕을 매일같이 오르내리며 학교엘 다닌다.
학교 진입로, 거리 건너에 즐비한 술집들, 여름이면 열어놓은 문안에서 들려오는 젓가락 두드리는 고성방가와 웃음 소리가 확성기처럼 흘러, 늦은 학교길의 아이들 귀를 어지럽힌다.
보여주는 것도 좋겠지만 이런 경우에 만은 위선이라도, 가장이라도 좋으니 좀 숨기는 척하는 안간힘이 그립다.
아버지의 잦은 술주정, 폭행, 부부싸움, 그리고 어머니의 가출, 언니의 탈선, 이런 틈바구니에서 동생들을 보살피며 학교를 겨우 나오던 옥수는 결국 2학년도 못 끝내고 자퇴를 했다. 그 아이를 찾으러 ㅂ동의 골목 골목을 뒤지던 무덥던 어느 여름, 나는 골목마다 가득 가득 넘친, 방치되어 버려진 아이들의 물결을 보았다. 부모가 부재중인 컴컴한 방에서 비슷한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모여 앉아서 하는 짓이란 어른들 흉내 밖에는 없을 것이다.
일년에도 서너번 이사를 하는 옥수네 방을 겨우 찾았을 때 옥수는 이미 나의 학생이 아니었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교사로서의 역할이 아닌 다른 역할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거리에 나붙은 큼지막한 극장간판 위에는 교목을 입은 남녀학생이 손을 맞잡고 마주보고 웃는 얼굴이 아이들을 유인한다. 거기다 '학생입장대환영'이란 간판 밑으로 아이들은 꾸역 꾸역 몰린다.
"청소년 영환데 왜 가면 안 되나요? 남학생과 극장에 간게 뭐 그리 큰 죄인가요?"
신문에도 거리에도 요란한 간판을 왜 학교에서만은 죄악시하느냐다. 내 잘못이란 재수가 없어 걸린 것 뿐이라는 말이다. ㄷ여중의 명희가 아무리 변명을 해도 학교는 가차없이 처벌한다. 문제가 커지면 골치거리가 되니깐.
교육위원회나 문교부는 어떤가. 신문에 보도된 고발, 적발된 학원 비위조사와 그 뒤치닥거리에 바쁜 그들, 백년지대계는 백년 뒤의 일이니까 천천히, 나중에, 이런 식으로 아마 백년쯤은 이대로 나갈 작정인가. 백년 후에 무엇이 되어 나타날 것인지 이 가공할 괴물을 상상조차 하고 있는지......
그렇다고 해서,
"난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 즉시 우리 아일 외출금지 시키죠. 더구나 해만 졌다하면 집앞 가게에도 심부름 시키지 않아요. 이게 제일 좋은 방법이죠"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어느 어머님처럼 아이들을 가두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걸까. 임시방편은 될지 모른다. 그러나 궁극적인 해결은 아이들을 어두워진 뒤에도 집앞 가게 정도에는 혼자 심부름 갈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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