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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의 작문(作文) 시간

2005/01/01 00:02
Posted by 유리아빠 Posted in " ETC/女敎師日記 "
5교시 작문시간이었다.
창 밖에는 한창 푸르름이 피어나는 5월이 진행 중이었다. 온통 신록으로 뒤덮힌 숲을 바라보며 나는 '나무'라는 글제를 아이들에게 주었다.
'나무'의 여러가지를 얘기하다가 어디까지나 자유롭게 쓰라고 하면서 하나의 비유를 들어보기까지 했다.
'나무'라는 식물과 인간과의 연상작용을 일깨우면서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올라가는 식물과 땅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인간이 자유를 향한 것과는 같은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면서 이런 식으로 상상력을 최대한으로 넓혀보라고 일렀다.
시간을 끝내고 아이들의 글을 뒤적이다가 나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70명 중에서 한 50명 정도의 글의 내용이 전혀 같은 결론으로 귀결되어간 것을 알았던 것이다.
'나무'하면 이미 아이들의 머리 속에는 식목일이 떠오르고 그것은 그대로 산림녹화, 국토보존, 심지어는 남북통일로까지 이어지는 비약적 흐름이 하나의 고정관념으로 굳어져 있음이 분명했다.
이미 개성의 목소리나 예술적 향기를 상실한 문장은 30년대 동경에서 유행하던 여름 날의 맥고모자와도 같이 흔해버린 것들로 밖에 여겨질 수 없었다.
소재가 주는 어떤 특징을 따라 간다기보다는 소재가 주제에 끌려가고 있는 글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분명 평균화로 향하는 통일성이 아닌 전체성에 더욱 가깝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분명 사고(思考)의 경직을 알리는 무서운 적신호라고 보아야 한다.
혜자(惠子)가 장자(莊子)에게 이르기를
"내게 큰 나무 하나가 있는데 나무기둥으로는 울퉁불퉁하고 옹이가 많아 널판으로 사용할 수가 없고 가지는 어찌나 비틀렸는지 잘라서 만들 것이 없다. 길 옆에 섰어도 목수가 바라보지도 않는다. 그대의 말은 그 나무와 같으니 크고 소용이 없다."
장자가 대답하기를
"어째서 그대는 나무를 도끼로 상처를 냄으로써만 쓰려하는가? 그 나무를 넓은 광야나 아무도 없는 동네에 심고 그 옆에서 산보하거나 그늘에서 편히 눕거나 하지 않겠는가"
라고 했다.
우리가 흔히 '교과서적인 인간', '교과서적인 사고'라고 하는 것은 교과서가 하나의 서론으로 다루어지지 않고 결론으로 끌어내려졌음을 말한다.
이미 교과서가 바이블처럼 추앙받던 시대가 지난것은 교과서가 모든 문제의 처음은 될 수 있으나 끝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과서가 절대적인 존재가 될 수 없다고 할 때 이미 거기엔 무수한 가능의 길이 수없이 열리는 것이 아닌가.
음악이라면 애국가로 족하다는 식의 어느 시골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 계시는 교육현장에서 교사가 갈 길은 두가지,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철저하게 두 겹으로 무장하는 길일 것이다.
인간만큼 다양한 변수(變數)를 가진 것이 없다는 원칙이 수긍된다면 그 인간으로부터 나온 사고 역시 천갈래 만갈래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도 인정되어야 한다. 우주를 담을 만큼 큰 마음은 어찌하면 가능할까.
장자와 같은 큰 쓰임은 어찌하면 소용될 수 있는가.
'나무'라는 이미지가 '산림녹화'로 연상되는 것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산림녹화'로 연상되어져야만 한다는 식의 당위성을 저어하는 말이다. 다만 그것 외의 다른 사고로의 이행의 길을 열어주지 않는 것, 그래서 일찌기 자유로운 사고의 싹을 외곬으로만 몰아넣어 온 것을 경계함이다.
'촛불'이라면 으례 '불조심 강조'로 밖에 넓혀지지 않고, '길'하면 '고속도로'와 '경제속도'로 밖에 깊어질 줄 모르는 사고로까지 되어온 어떤 과정을 나는 의심할 수 밖에 없다.
아이들의 사고는 아이들 식으로 돌려주고 싶은 거다. 주입이나 강요에 의해서 누구고 똑같은 닮은꼴을 만들고 싶지않은 거다. 왜 우리는 어딘가 다르지 않고 닮아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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